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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경북 이야기보따리 수기 공모전 여행길 따라 소복이 쌓이는 정겨운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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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재 작성일19-10-06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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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신문=장성재기자] ◆ 은 상 = 이명근
 
  추억여행
 
  요즘은 더위가 찜통수준이라 습하고 더워서 숨쉬기조차도 힘들다.

  여행이야기를 쓴다고 하면서 지구 온난화를 말하고자 한다면 조금은 오버라고 생각되지만 수많은 학자들도 닥쳐올 재난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고 매년 여름이면 뜨거워지는 날씨에 우리 아이들이 지금보다 나쁜 환경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일상의 편안함을 쫓기보다 지구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보고 지금이라도 좀 더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에어컨 없이도 잘 살았던 어린 시절 그때는 가족여행도 쉽지 않았고 여행이라곤 학교에서 가서 수학여행은 특별한 경험이 되었다. 요즘은 사진은 많이 찍지만 앨범에 남기지 않고 저장해두고 필요할 때 보곤 하지만 집집마다 사진기가 귀하던 시절 관광지에는 사진사들이 있었고 수학여행을 가면 사진사들이 따라다니시곤 했다. 그 시절 낡은 사진 속 아이들이 웃고 있다.

  70년대 말 흑백사진 속 불국사에서 찍은 사진을 보니 다시금 불국사에 가보고 싶어졌다.

  대구에 살다가 경주로 온지도 25년이 훨씬 지났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가까운 불국사를 가보지 않고 지냈다. 좋은 곳에 살다보니 좋은 줄 모른다고 했던가! 가까이 있으니 더 안 가게 되었던 불국사를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에 쉬는 날 늦은 아침을 먹고 얼음물 한 병들고 불국사로 향했다.

  너무 오랜만이라 기억조차도 희미한 불국사를 들어서니 양쪽의 나무들과 시원한 바람이 나를 반긴다. 소나무와 참나무로 우거진 경내는 숨 쉬는 것조차도 절로 경건하게 만들어 주어 몸과 마음이 힐링(Healing)이 되어 준다. 예전에도 이렇게 많은 나무들이 있었던가. 세월과 더불어 더욱 풍성해진 나무와 꽃들이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걸, 왜 자주 오지 않았는지 후회가 된다.

  토함산의 중간에 자리 잡고 있는 불국사는 법흥왕 15년에 왕의 어머니의 뜻에 따라 나라의 안정과 백성의 평안을 위해서 지어지기 시작하여 신라 경덕왕 10년에 김대성에 의해 지금의 절로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 규모가 100칸이 넘는 정도였다고 하니 그 당시 불국사의 모습이 간음이 되지 않을 정도이다. 남아있는 지금의 모습만 보아도 감탄이 절로 나는데 예전의 모습은 상상이 안 될 정도로 멋지지 않았을까 천년이 지난 지금 많이 훼손이 되었다고 하지만 남아 있어 주어 고맙고 자랑스러운 불국사다. 

  불국사도 훌륭한 문화유산이지만 천년세월 묵묵히 있는 다보탑과 석가탑… 보기에도 전혀 다르게 생긴 두 탑 이지만 어린 나는 어느 쪽이 다보탑인지 석가탑인지 몰라 십 원짜리를 들고 다니며 봤던 기억이 난다. 지금 헛갈릴 때가 있다. 다시 보니 석가탑(釋迦塔)은 정직하고 진지해 보이고 다보탑(多寶塔)은 화려하고 세련되어 보인다.

  탑 앞에서 호기심 많던 그 친구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제는 머리하얀 중년의 아저씨들이 되어 있지 않을까 다시 보고 싶고 되돌아 가보고 싶은 어린 시절이지만 기억조차 아련하니 너무 아쉽다.

  걸어 다니다 보니 땀이 송송 난다. 경내를 돌다가 뒤뜰에서 얼음물 마시며 잠시 머물게 되었다. 그곳은 작은 돌들이 모여 탑이 만들어져 있었는데 오래된 나무 옆으로 작은 돌탑들은 저마다의 소망을 안고 정답게 모여 있다. 나도 그냥 지나치기가 아쉬워 돌 하나를 얹어 놓고 가족들의 건강을 빌었다.

  불국사에서 동쪽으로 산길을 걸어 올라가면 석굴암이 나타나지만 더운 여름날 엄두가 나지 않아 차로 올라갔다. 지구를 생각한다면 걸어가야 하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나를 탓하며 도착한 석굴암 입구에 주차를 하고 석굴암으로 향했다.

  토함산은 바다 가까이에 있기에 날씨가 맑은 날이면 멀리 동해바다가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안개가 자주 껴 바다에서 산이 멀리서 밀려오는 안개를 들이마시고 토해내는 모습을 닮았다고 한다. 맑은 날 갔던 탓에 안개는 없었고 멀리 어슴푸레 동해바다가 보였다.

  수학여행 왔을 때 석굴암 부처님이 동해를 바라보고 있다고 해서 동해바다 한번 보려고 작은 키로 동동거리며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그때 바다를 봤는지 기억은 나질 않는다.

  예전에는 아주 커 보이고 무서워 보이기까지 했던 석굴은 본존불을 중심으로 천부상, 보살상, 나한상, 거사상, 사천왕상, 인왕상, 팔부신중상등이 조각되어 있었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많이 훼손되었다고 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아쉬움을 뒤로 한 체 근처에 들러 점심을 먹고 남산으로 향했다. 남산은 자주 가던 곳이 지만 삼릉 숲을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그쪽으로 향했다.

  신라인들 걷던 길 따라 걸으며 내 검은 근심도 몰래 버리고 부처를 품은 바위를 보며 아달라왕, 신덕왕, 경명왕의 삼릉에서 울창한 소나무 둥치에 기대어 바람 따라오는 숨결을 느껴본다.

  사람을 위하여 남(南)으로 안쳐 놓은 산, 나라를 위하여 산에 올린 석공의 혼(魂)이 담겨 있는 산이라 남산이라 했던 것일까 그래서 부처가 산다고 믿었던 것일까 사람이 부처라고 원할 때마다 백성의 모습으로 왔던 것일까 신라인의 마음이 되어 삼릉 숲을 거닐어 보았다.

  매일 매일 건너다 만 보던 산에 들어와 내 자식과 가족의 건강을 빌어도 염치없을까만 남산은 남산이기에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의 기도가 쌓여 더욱 영험해 보이지 않을까 싶다.

  남산은 가끔 운동 삼아 올라오던 곳이었지만 마음먹고 올라오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작년에 다녀온 유렵여행도 값지고 좋았지만 가까이 있어도 가지 않았던 경주 추억여행은 오늘을 계기로 경주 곳곳을 돌아보고 싶다는 결심과 더불어 지인들에게 많이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고 이제는 고향인 대구보다 경주가 더욱 정겹고 편안한 고향이 되었다.
 
 
  ◆ 은 상 = 고영관
 
  '주왕산의 추억'
 
  근자 우리나라 경제에 치명타를 입히려는 일본의 수출규제조치에 대한 반감으로, 지금 국내에서는 일본제품 불매운동과 함께 일본 여행 보이콧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나는 일찍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한 경험이 있지만, 팔자 좋게 순수한 관광 목적의 해외여행은 단 한 차례도 없었던 것 같고, 가까운 일본을 포함해 전 세계 육대주(六大洲)에 걸쳐 오직 업무상 목적에 의한 소위 비지니스트립을 많이도 다녔던 것 같다.

  그러니까 70, 80년대 까지만 해도 해외여행은 아주 특별한 경우 외에는 일반인들이 우선 임의로 출국하기가 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특히 순수한 관광 목적의 여행은 더 더욱 까다롭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일반인들의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진데다 경제적 여유까지 생기면서, 요즘은 해외여행이 그 때 그 시절 이웃 동네 드나들기 보다 더 쉬워진 것도 사실이다. 나는 해외 여러 곳에서 한국 관광객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흡사 소풍 나온 유치원생들처럼 인솔자가 안내하는 대로 정해진 코스를 순례하는 패키지 여행객들을 보면서, 저런 여행을 무엇 때문에 해야 할까? 라는 의문도 가졌지만, 아무튼 요즘은 세계 어느 나라 유명 관광지에서도 우리 한국 여행객들을 발견하기가 어렵지는 않은 것 같다.

  원래 여행을 좋아하는 나의 역마살은 해외 취업을 끝낸 후에도 여전했는데, 다만 행선지가 해외에서 국내로 바뀐 것뿐. 그런데 나의 여행 취향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아서, 고급 호텔이나 럭셔리한 리조트에서 잠을 자고 정해진 스케쥴에 따라 움직이는 단체여행은 전혀 적응이 되지 않았는데, 그것은 아마 원래 가난한 여행객이었던 버릇을 합리화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여행하는 시간만이라도 일상의 삶과 여러 가지 통제에서 벗어나 자연인이 되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한 때, 주말마다 전국의 명산이나 휴양림 캠핑장 등을 찾아다니면서 나는 우리 한반도가 얼마나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지닌 축복의 땅인가를 새삼 발견하곤 했는데, 내가 사는 경주에서 그리 멀지 않은 '주왕산'역시 내 기준으로는 세계 어느 관광지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자연 관광지라 하고 싶다. 거대한 협곡의 규모를 자랑하는 미국의 그랜드케년이나 중국의 장가계 같은 웅장함은 없을지 몰라도, 경사가 완만하고 잘 닦여진 등산로, 그리고 마지막 정상에 오르기 위한 짧은 구간을 제외하면, 산 입구에서부터 내내 개울물 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는 등산로뿐만 아니라 군데군데 웅장하진 않지만 아기자기한 폭포가 연이어 있고, 땀을 식히며 석간수에 발을 담구거나 세수도 하며 등산할 수 있는 곳은 아마도 주왕산 외에 흔치는 않을 것 같다.

  중국의 주나라가 망하면서 주왕(周王)이 쫓기고 쫓겨, 우리 한 반도의 거의 끝자락이라고 할 수 있는 두메산골 청송까지 숨어들어온 유래로, 주왕이 몸을 숨긴 산이라 하여 '주왕산'이라 불려 졌다는데, 기암단애, 용추협곡, 주상절리, 절골협곡 등으로 이어지는 지명만으로도 가히 주왕산의 산세를 짐작할 만 하지 않은가? 금방이라도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하얀 속옷을 벗고 물로 뛰어들것만 같은 용연폭포 아래, 눈치 볼 것도 없이 배낭에서 막걸리 병을 꺼내 그 차디찬 폭포수에 담궈둔다. 중국의 주왕이 나라를 잃고 여기까지 쫓겨 와 저 폭포수에 발을 담근 채 망국의 한을 달래고 있었는지, 아니면 여기가 바로 극락임을 깨달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저 막걸리 한 사발로 제왕을 부러워하지 않을 터이다.

  나는 어제 오후에 주왕산 입구 캠핑장에 도착했다. 캠핑을 즐기시는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텐트도 집은 집인지라 집짓기가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런 불편 때문인지는 몰라도 요즘은 뭐 던지면 펴진다는 팝업텐트 같은 것도 다양한 모델이 나오긴 하지만, 그다지 폼 나는 집은 아닌데다, 그것마저도 텐트 주위 여러 곳에 팩을 고정하는 작업이 따르고 또 안락한 잠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실내공사도 전혀 없지는 않기에, 보통 일박 정도를 위해 번거로운 야영준비를 해놓고, 그 다음날 철거는 너무 아쉽고 억울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나는 했다하면 최하 2박 이상의 야영이 보통인데, 모든 준비를 끝내고나니 날이 어두워졌고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텐트 속에서 구수한 커피향을 음미하며 마눌님과 빗소리를 즐기고 있었다.

  그 때, 그 비속에 다른 야영객이 우리 옆에 도착하였으나 꽤나 강한 비바람에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차에는 젊은 부부와 꼬맹이 둘이 타고 있었는데, 깜깜한 밤중인데다 비바람은 몰아치고 사정이 좀 딱해보여서, 나는 고참 캠퍼답게 준비하고 다니는 장비를 자랑했다. 그러니까 비상용 비옷을 입고, 방수 서치라이트를 들고 나간 것이다. 가족이 많아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무슨 텐트는 또 그리도 거창한지, 아무튼 그 젊은이가 자기 가족들을 빨리 피신시킬 수 있도록 숙달된 솜씨로 거들어 텐트를 완성해 주었다. 차속에 쪼그리고 있던 그의 부인과 아이들이 금방 완성된 집으로 우루루 뛰어들어가는 것을 보며 나는 그제야 안도할 수 있었다.그는 나에게 연신 절을 하더니, 타프 아래에서 저녁 식사 준비를 끝내고 우리 내외를 자기집으로 초청하여 비싼 양주를 한 병 꺼냈다. 야영장이나 산에서는 이처럼 생면부지한 사람들이 금방 친해지고 이웃이 되기도 하는데, 어쩌면 우리가 산행이나 야영을 하는 이유는 단순히 자연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현관문을 마주보는 아파트에 밀집되어 살면서도 우리는 이웃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자연속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선량하고 친절한 사람들뿐이다. 왜일까?

  내가 막 차가워진 막걸리를 폭포수 아래에서 건져 드는 순간, "어! 여기서 또 만나네요" 그의 가족이 도착했고, 우리는 여느 때 한 가족처럼 둘러앉아 함께 배낭 점심상을 펼쳤다. 젊은 내외의 말씨를 보아하니 아래지방 사람들은 아닌 것 같은데, 인형처럼 귀엽게 생긴 여자 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소세지를 하나 집어들고, "할아버지 이거 드쪄요" 한다. "나 할아버지 아니고 할밴뎅!" 이건 누가보아도 할배 할매, 아들 내외 그리고 손주들로 구성된 영낙없는 한 폭의 정겨운 가족 그림이 아니던가?

  부담스러운 여행 경비에다, 음식도 입에 맞지 않고, 말도 통하지 않는 불편한 외국여행, 특히 방사능 식품에다 혐한의 눈초리까지 기분 나쁘기 짝이 없는 그런 여행보다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아름다운 금수강산 대한민국, 특히 자연이 좋은 경북,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는 천국의 비경을 간직한 청송 주왕산 여행을 모든 분들에게 권장하고 싶다.
 
 
  ◆ 은 상 =장명희
 
  주왕산! 내생애의 기쁨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가끔 자기 자신을 의문의 도가니로 밀어 넣을 때가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이럴 땐 무작정 아무 준비도 없이 산으로 바다로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상쾌한 자연이 마음을 헹구어 주겠지. 거기에서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가늠할 수 없는 인생의 묘한 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어본다. 어느 덧 내 나이 50대 중반을 넘어서지만, 결혼을 못한 노처녀라기보다 시장에 나가면 '아줌마'라는 호칭이 더 잘 어울린다. 많은 사람들 속에 내 자신의 모습은 왠지 혼자이기에 왜소할 때가 있다. 어느 유명한 시인이 한 말 '가지 않는 길'이 생각난다. 물론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밟지 않는 풀잎들이 제각기 파릇파릇하게 하늘을 향해 있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들뜨게 된다. 그 풀밭을 걸어갔더라면 아마도 정숙하게 지금의 혼란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서 간단하게 배낭을 메고 학창시절 너무나 갈망했던 청송 주왕산으로 떠났다. 주왕과 장군의 전설이 곳곳에 배어 있는 유서 깊은 주왕산은 경북 청송군과 영덕군에 걸쳐있는 국립공원이다. 산은 그리 높지 않으나 거대한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었다. 죽순처럼 솟아오른 봉우리 및 기암괴석 여기에 울창한 송림이 한데 어울러져 한 폭의 산수화 같은 절경을 빚어내었다. 이른 새벽 오랜만에 떠나보는 여행이지만 마음은 조금 무거웠다. 나의 인생길의 선택을 하는 것이기에 여행보다 인생 공부의 예습을 하러가는 기분이었다. 청송 주왕산의 기암절벽은 나에게 어떤 답으로 대답해줄까 궁금한 마음으로 떠났다. 결혼의 의미를 주왕산은 침묵하게 인도해 주리라 믿었다.

  주왕산은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것 같았다. 신선하고 상쾌한 바람이 콧등을 자극했다. 산세는 기복이 있어서 용이 날아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범이 웅크린 것 같기도 했다. 개울물은 한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서리고 돌아 돌아 마치 서둘러 먼 바다로 가 모래사장 여름인파를 맞이하러 가는 것 같기도 해서 흥겹게 보였다. 숲속에도 작은 도서관이 있다니 아담한 정자 같은 도서관이 나의 시야를 고정 시켰다. 산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떤 부류의 책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들어가 보았다. 역시 자연을 아끼고 보존하자는 동식물들에 대한 책으로 즐비했다. 우리가 무심코 산에서 즐길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산이 주는 혜택을 감사로이 받아들이면서 지켜야할 에티켓이 있는 것이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의무 사항이라고 생각하면서 다시 산에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산속의 도서관은 이렇게 많은 의미를 던져주는 것 같기도 했다.

  몇 권의 책을 읽고 난 후, 마음의 양식을 얻고 외씨버선길에 도달했다. 청송, 영화, 봉화, 영월 4개 군이 모여 만든 4색 매력의 길이고, 이 4색길이 합쳐지면 외씨버선과 같다하여 외씨버선길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혼자 이룰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여러 사람들이 모으고 모아서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외씨버선길을 보면서 알 수 있었다. 길을 걸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등산객이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길을 만들기 위해서는 얼마나 서로가 상부상조하면서 우리 선조들의 미풍양속이 담겨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풍경에 빠져 피곤함을 잊은 체, 잠시 후 주방계곡 입구에서 100여 미터 위쪽에 위치해 있는 아들바위에 도착했다. 바위를 등지고 다리가랑이 사이로 돌을 던져 바위에 올리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었다. 전설이 머리를 솔깃하게 했다. 아들을 낳는다니? 내가? 아들바위 위에 돌을 던져 올리면 아들은 물론 결혼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산을 몇 번 넘어 여기 도착한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시험대에 올랐을까. 힘껏 벌린 가랑이 사이로 돌을 던졌다. 이럴 수가! 돌멩이 하나가 아들 바위 정상에 올라갔다.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나올 정도였다. 두 마리 토끼를 다잡을 수 있으니. 너무나 흥분되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청송 주왕산까지 오기를 얼마나 잘한 일인지 '결혼'이라는 말이 나를 설레게 했다. 내 인생의 위안을 주었고 가지 않는 길을 가게 해주었다.

  망월대에 올라 바라본 연화봉과 병풍바위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만개한 연꽃 모양 같다는 연화봉. 신은 어떻게 저렇게 멋진 조화로움으로 만들었을까 상상이 가지 않았다. 잠시 자연의 매력에 빠져 보았다. 연화봉을 바라보면서 혼자라는 것보다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 인생에 있어서 힘이 되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너무나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서 지난날 외로움에 지쳐 따뜻한 사람의 체온이 그리워하던 시절이 생각났다. 이제 내 마음은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더불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을 일렁거렸다. 지금 미래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산다는 생각을 해보니 너무나 행복한 마음이 앞섰다. 여기에서 독신의 삶이 자꾸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생겼다. 연화봉과 병풍바위는 내 인생의 내비게이션을 만들어 주었다.

  흠뻑 젖은 땀을 닦으면서 시루봉에 도착했다. 산들바람이 도시에서 느끼는 그런 더위는 아니었다. 자연은 정말 대견스럽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시루봉은 그 생김새가 떡을 찌는 시루와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측면에서 바라보면 사람의 옆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시루봉에는 옛날 어느 겨울에 한 도사가 이 바위에 도를 닦고 있을 때 신선이 와서 불을 지펴 주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자연은 마음까지 힐링해 주는 묘한 신비성도 있었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절벽 위에는 청학과 백학 한 쌍이 둥지를 틀고 살았다하여 학소대라 하였다. 어느 옛날 한 백학이 사냥꾼에게 잡혀 짝을 잃은 청학은 날마다 슬피 울면서 바위 주변을 배회하다가 자취를 감추었다는 슬픈 사연이 전해오고 있었다. 이제는 짝의 중요성을 아는 지혜로운 여자로 변신하고 있었다.

  출발선에서 무거운 발걸음이 주왕산을 한 바퀴 돌고 나니 마음을 헹구어진 것 같았다. 내 인생의 이정표도 올바르게 세워진 것 같다. 연화봉처럼 함께 둘이서 모여 서있는 것이 너무나 빛이 나고 아름답게 보였다. 주왕산을 돌아보면서 인생의 진정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앞으로 외롭지 않는 삶이 미래에 펼쳐질 것이라고 기대된다. 진정한 답은 자연이 주었다. 본래 자연과 인간은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주왕산은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스승이었다. 언젠가 결혼을 해서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주왕산의 오솔길을 걸으면서 지난날의 묵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주왕산은 우리의 마음의 갈피마다 새롭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기대된다.
장성재   blowpa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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